꿈속에서 희한한 사건에 휘말려 사투를 벌이던 중 자명종 소리에 깨어났다. 분명 시계를 7시에 맞춰두었으니까.. 그런데 뭐냐 이 시간은!! 자명종과는 무관하게 내 손목시계는 7시 5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내 시계가 잘못 됐나 해서 TV를 켜봤더니 7시 50분이 맞았다.
예정보다 한시간 가깝게 늦게 일어난 덕분에 아침 일찍 교토로 출발하려던 나의 계획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밤에는 도쿄행 야간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에 투덜투덜대면서도 짐을 싸들고 민박을 나섰다.
교토(京都)로 가려면 JR이나 사철을 타면 되는데, JR 쪽이 빠르고 교토 역까지 직행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540엔이라는 아름다운 요금 때문에 결국 사철인 한큐 전철을 탔다.(390엔) 일단 종점인 카와라마치(河原町)까지 간 다음 교토 역으로 걸어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방향치가 어디 가겠는가.
카와라마치에서 내린 나는 정확히 두시간 뒤 교토 역을 찾을 수 있었다.-_-
교토 역의 테즈카 오사무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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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에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간신히 교토 역에 도착한 나는 잠시 테즈카 오사무 월드로 대피해 있다 역 2층의 관광안내소로 올라가 시 버스 1일 승차권을 구입했다. 교토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버스노선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이 500엔짜리 카드 한장이면 거의 모든 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카드의 정확한 명칭을 몰라서 여행가이드에 나와있는 그림까지 보여주며 구입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더니, 똑같은 카드를 자판기에서 팔고 있어서 날 맥빠지게 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본래 계획은 니조성(二條城)->킨카쿠지(金閣寺)->긴카쿠지(銀閣寺)->키요미즈데라(淸水寺)의 루트로 돌아보는 것이었는데, 오전의 삽질로 인해 시간이 빠듯했다. 이 중 세군데라도 가 볼 수 있을지 알수가 없었다. 일단 갈 수 있는데까지 가보기로 하고 니조성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일본에 와서 내내 날씨가 안 좋았는데, 왠일로 날이 개어서 잘되었구나 싶었는데 뭔가 흩날리고 있길래 자세히 보니 눈이었다. 황당하게 하늘은 화창하니 맑은데 눈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이건 누군가가 날 놀리고 있다고밖에는 생각이 안됐다. 니조성에 들어서자 눈발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니조성에서 나오니 3시가 넘어있었다. 교토의 어지간한 명소들은 대개 5시면 폐관하기 때문에 서둘러 다음 장소인 킨카쿠지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하지만 어김없이 나는 똑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 대상이 열차에서 버스로 바뀐 것만 빼면.
'잘만 하면 네군데 다 가 볼수도 있겠는걸..' 이라는 생각을 하며 킨카쿠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데, 버스는 계속 모르는 곳으로만 나아가는 것이었다.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가다보면 곧 나오겠지 하며 앉아있는 동안 버스는 드디어 도착했다.
종점에.
버스에서 내린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난 교토 관광하러 왔지 유적 발굴하러 온 인디아나 존스가 아니란 말이다. 뒤늦게 가이드를 뒤져보자 니조성에서 킨카쿠지까지는 한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서, 중간에 갈아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X됐다!' 를 외치며 왔던 길을 조금 되돌아가자 큰길이 나왔고, 안내도가 보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킨카쿠지는 근처에 있었다. 헐레벌떡 킨카쿠지에 도착한 시간은 4시.
킨카쿠지를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긴카쿠지까지 가기에는 늦었고, 유일하게 6시까지 문을 여는 키요미즈데라를 끝으로 교토 관광을 끝내기로 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버스가 한대 도착했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타길래 눈은 내리고 날씨는 춥고 해서 일단 타고 보자 라는 생각에 버스에 올랐다. BUT..
그 버스는 교토 역으로 돌아가는 버스였다.. ojL
교토 역에 도착하자 5시가 다 되어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난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키요미즈데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얼굴도장이라도 찍고 가야지. 문 닫기 전까지만 가면 되는거 아냐?
도중에 또 못 내릴 뻔한 위기를 넘기고('키요미즈데라' 라는 정류장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고조자카(五條坂)' 라는 곳에서 내려 걸어가야 함) 간신히 버스에서 내린 나는 기요미즈데라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정말로 뛰었음) 혹시 늦은 시간이라 나말고는 방문객이 없어서 경비원들 눈치밥 먹어가며 보고 와야 되나 내심 걱정했는데 의외로 이 시간에 오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다. 캄캄해서 절 안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마음 속은 '해냈다..!' 라는 뿌듯함에 사로잡혀 있었다-_-
안되는게 어딨어!
날씨때문에 이정도 밖에 찍을 수 없었다.
눈은 계속해서 내렸다.
돌아가며
짧았지만 어떤 곳보다도 기억에 남을 키요미즈데라 방문을 마치고 교토 역으로 돌아와 오사카로 향했다. 야간버스를 타기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우메다 역 근처의 요도바시 카메라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요도바시 카메라에서. 드캐 코너에 드캐 게임이 하나도 없는 서러움
요도바시 카메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시간이 되어 야간버스 집합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건지 도저히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행사에서 준 약도를 몇번이고 바라봤지만, 언제적 자료를 토대로 만든건지 약도에 표시된 건물 이름은 바뀌고 간판도 교체되어 아무 쓸모가 없었다.
버스 출발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계속 같은 곳만 맴돌던 나는 결국 분노게이지가 1000% 충전되어..
또 택시를 탔다-_-
약도 밑에는 '정 길을 못찾겠으면 택시를 타고 XXXX건물 앞에서 내리면 된다' 라고 쓰여 있었는데 XXXX건물 따윈 존재하지도 않는단 말이다! 함께 약도를 보며 연구하던 중 아저씨가 목적지를 물었고, 야간버스를 타야 한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출발시켰다. 이 때가 버스 출발 5분 전.
기사아저씨도 내 사정을 알았는지 택시는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버스를 타러 뛰어갔다. 직원들에게 예약 확인증을 보여주니 이런저런 자료를 막 뒤지더니 내 이름이 '손 타에크 인' 이냐고 묻는다.
천신만고 끝에 버스에 올라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버스를 못탔을 경우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도쿄는 당연히 못갈것이고, 가요쇼도 안녕이다. 다음날이라도 간다면 갈수야 있겠지만 또 그에 따른 비용은 만만치 않을테니까. 잠시 망상을 하며 지금까지의 사건(?)들을 정리하던 중 차내의 불이 모두 꺼졌고, 나도 잠을 자두기로 했다.
이제 아침이 되면 도쿄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