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종 소리에 맞춰 7시에 일어났다. 원래는 6시나 그 전에 일어나서 일찌감치 출발하려고 했는데, 어제 워낙 피곤했던 나머지 한시간을 더 잤다.
준비를 마치고 스가모 역으로 향하던 중, 나는 늦은 만큼 더 서두르기는 커녕 배가 고파서는 여행을 할 수 없다며 역 근처의 마츠야(松屋)로 들어갔다. 3년전 음료수 한병들고 빨빨 돌아다니며 하루를 버티던 나의 첫 여행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에 나도 놀랐다.
이왕 늦게 된거 오늘과 내일 일정을 바꿔버릴까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내일 날씨가 어찌 될지도 모르고 해서 계획대로 하기로 하고 신주쿠로 향했다.
어제처럼 신주쿠의 오다큐선 매표소에서 하코네(箱根) 프리패스를 구입했다. 5500엔이란 가격에 터치스크린을 누르는 손이 덜덜 떨렸다;;; 패스를 구입한 뒤 플랫폼으로 올라갔더니 시간표에는 오다와라행 열차가 표시되어 있는데, 정작 눈 앞에 있는 열차는 신마츠다(新松田)라는 곳으로 가는 열차였다. 괜히 탔다가 이상한데로 가게 될까봐 일단 열차를 보내고 다음 열차인 카타세에노시마 급행을 타고 사가미오노에서 내렸다.
사가미오노에서 다시 오다와라행 급행을 기다리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열차가 내 눈 앞을 지나가고 있어서 별 수 없이 10여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분명 오다와라행이었던 열차가 신주쿠에서처럼 '신마츠다행' 이라고 쓰여있는 것이다. '열차의 반(前량)은 오다와라까지, 나머지 반(後량)은 중간에 분리되어 신마츠다까지' 가이드에서 봤던 내용을 그제서야 이해한 나는 허겁지겁 앞으로 달려가 열차를 탈 수 있었다.
급행이긴 했지만 오다와라까지는 거의 모든 역에 정차했기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려서 10시가 넘어 있었다. 그런데 오다와라에서 내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오다와라 발 등산열차는 8시 57분까지밖에 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오다큐선을 타고 종점인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까지 가서 등산열차를 탔다.
산을 오르는 열차라 그런지 등산열차는 매우 비좁았고, 에어컨도 나오지 않아 더웠다. 빈자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등산열차의 종점인 고라(強羅)역까지 약 40분을 꼬박 서서 가야만 했다. 도중에 두 정거장 정도 스위치백 구간이 있어서 열차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라역에서 내린 뒤 이번에는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 역시 복작거리는 건 마찬가지여서, 하코네에는 이제 막 왔을 뿐인데 벌써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일정을 바꾸는게 좋았나.. 10여분 케이블카를 탄 뒤 소운잔(早雲山)역에서 내리자 다음엔 로프웨이가 나타났다. 로프웨이는 탑승인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내내 서있던 나는 겨우 자리에 앉아 다리를 뻗을 수 있었다. 안개가 끼어 있어서 로프웨이 밖의 경치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오와쿠다니(大涌谷)에서 로프웨이는 정차했고, 역을 나서자 곳곳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광경이 보였다. 저 유명한 쿠로타마고(黒タマゴ)는 이곳에서 팔고 있었다. 나 역시 계란을 한봉지 사들고 나와 벤치에서 까먹었는데 어째서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다 쳐다봤다-_-
계란을 다 먹고 나서는 오와쿠다니 자연연구로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등산열차에 케이블카에 로프웨이에. 뭔가 타고만 있다 몸을 움직이자 그제서야 조금 살것 같았다. 코를 찌르는 유황냄새와 수증기, 무더위의 조화는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자연연구로를 돌아본 뒤 이제 토겐다이(桃源台)로 가는 로프웨이를 타기 위해 역으로 돌아왔는데 오와쿠다니-토겐다이 구간의 로프웨이는 신형으로 교체작업중이라 운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하코네 여행은 이걸로 끝인가.. 라며 황당해하는데 안내판을 자세히 보니 대신 그 구간에서 버스를 운행중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것을 타고 토겐다이로 향했다.
등산열차 다음은 케이블카
케이블카 다음은 로프웨이
올라가는 도중
안개때문에 보이는게 없었다
한참 올라오자 조금씩 아래가 보였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오와쿠다니 도착.
쿠로다마고
껍질이 까만게 특징. 맛은 그렇게 차이를 못느꼈다.
오와쿠다니 자연연구로로 올라가는 길
곳곳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다들 여기서 먹고 있었군..
이렇게 계란을 삶는 듯?
유황 때문인지 물이 탁했다
오와쿠다니역에서 만난 인도(?)여인들. 깔룰리 바닐~♪
토겐다이에 도착하자 아시 호수(芦ノ湖)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하코네마치(箱根町)나 모토하코네(元箱根)로 건너가려면 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따라 선착장으로 가 붉은색의 로얄호에 탑승했다. 1층에는 좌석이 있었지만 갑판에서 경치를 보는 쪽이 낫겠다 싶어서 위로 올라갔다. 운좋게 제일 앞 난간이 비어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으니 이윽고 배가 출발했다. 하코네마치까지는 30분 정도 걸렸다.
배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하코네세키쇼 터(箱根関所跡)라는 곳이 있어서, 300엔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보았지만 규모도 작고 그다지 볼만한 건 없었다. 공동으로 입장할 수 있는 하코네세키쇼 자료관은 나중에 들르기로 하고 조금 더 걸어서 온시하코네(恩賜箱根) 공원으로 갔다.
산책로를 걷다가 공원 중앙에 있는 호반 전망관이라는 건물에 잠깐 들러서 호수 쪽의 전망을 바라보다 다시 공원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선착장에서
내가 탈 로얄호
아시 호수
유람선은 총 세종류가 운행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인 바사호.
선수상
하코네마치로 향하며
빅토리아호와 지나쳤다
하코네세키쇼 터에서 내려다 본 아시 호수
하코네세키쇼 터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하코네세키쇼 자료관
온시하코네 공원 입구
이 길을 따라가면
호반 전망관이 나온다
이토 히로부미 사진도 있다
호반 전망관에서
실제로 전화가 걸리는지는 모름
공원 여기저기를 쏘다니다가
나무가 휘어 있다
눈물의 셀카
보트가 덩그러니
이제 모토하코네쪽으로 가볼까 생각했는데 걸어가자니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거기다가 하코네신사의 개방시간이 오후 4시까지였기 때문에 가봤자 어제 켄쵸지에서처럼 문 앞에서 어슬렁 거리다 돌아오게 될 것 같기도 했다.
애당초 온천 같은 건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이후의 일정이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늦은 건 아니었지만 다른 곳을 찾아가기엔 애매한 시간. 나는 결국 돌아가기로 하고 하코네세키쇼 자료관에 잠깐 들렀다가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향했다. 일찍 도쿄로 돌아가서, 시간이 남으면 태정낭만당에나 들러야지.
같이 탄 사람들이 모토하코네에서 거의 다 내렸기 때문에 텅 빈 갑판 위에 앉아 토겐다이로 돌아왔다. 프리패스 본전 뽑을 겸(이미 뽑았지만) 오와쿠다니까지 가서 로프웨이랑 케이블카나 한번씩 더 탈까 하다가 귀찮기도 하고 오다와라행 버스가 보이길래 그걸 타고 한번에 가기로 했다.
다시 하코네세키쇼 터로 돌아와서
히토미온나(人見女)라고 한다.
하코네마치 떠나기 전에
모토하코네는 포기했다
토겐다이로 돌아가는 중
배 안은 한산한 분위기
운행을 마친 빅토리아호
토겐다이의 역무원도 오와쿠다니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로프웨이를 타시려는 분들은 이쪽으로..' 라고 말했기 때문에 오다와라행 버스를 탄 것이었는데, 이날따라 길이 엄청나게 막히면서 오히려 이쪽이 더 늦어버리고 말았다.
오다와라에서도 신주쿠까지 두시간 가깝게 걸려서 태정낭만당에 가려던 계획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신주쿠에 내려서는 도중에 이상한 곳으로 나와서 출구를 못찾고 우왕좌왕하다 간신히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민박으로 바로 돌아가기에는 조금 아쉬운 마음에 도쿄에 유학 와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질 않아서 스가모로 향했다.
워낙 유명한 곳이고 나도 꽤나 기대를 했던 곳이지만 하코네는 그 기대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위에도 살짝 언급했지만 난 답답한 건 질색이라 몸은 힘들더라도 직접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쪽을 더 좋아하는데, 하코네는 그런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었다. 그저 하루종일 뭔가 타고 올라가서 다시 타고 내려온 기억밖에는 나질 않았으니. 그렇다고 시간이 덜 걸린것도 아니고..
여러가지 아쉬움 속에 오늘 하루 일정도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민박에서 먹었던 김치라면. 김치도 큼직하고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