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실 지난 여행 때 두 번(2003년, 2004년) 요코하마(横浜)에 가 본 적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요코하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기어이 이번엔 오늘 하루를 바치기로 했다.
내가 요코하마에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두번 다 늦은 저녁에나 찾아가 실컷 걷기만 했다는게 첫번째였고, 그때마다 겪었던 사건(바이러스로 사진 증발, 카메라 고장)들이 자꾸만 머리 속에 떠올랐으며, 무엇보다도 난 요코하마를 사랑했기 때문에-_-
이어지는 내용
언제나처럼 7시에 일어나서 스가모 역으로 갔다. 배고프면 여행을 못해 어쩌구 라고 말한게 바로 어제인데 어제 밥 먹다가 하코네에 늦게 도착했던 게 떠올라서 '아침은 요코하마에서 대충 먹지~' 하고는 곧바로 전철을 타고 시부야로 향했다.
시부야에서 내려 토큐도요코(東急東橫)선의 미나토미라이(みなとみらい) 티켓을 구입한 뒤 요코하마행 급행을 탔다. 요코하마는 도쿄 바로 밑에 있기 때문에 30분이면 갈 수 있었다. 요코하마에 도착하자 토큐도요코선은 미나토미라이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두 정거장 뒤에 있는 미나토미라이역에서 내렸다.
역 주위에 있는 랜드마크 타워, 닛폰마루호(日本丸) 등을 지나치며 JR 사쿠라기쵸(桜木町)역으로 향했다. 어차피 이곳들은 오후에 다시 올 것이기 때문에 아침에는 산케이엔(三渓園)에 들렀다 오기로 한 것이다. 산케이엔은 처음 일정을 짤 때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던 곳이었지만, 어딘가에서 하도 추천을 날려대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사쿠라기쵸역 앞에서 산케이엔으로 가는 버스를 놓쳐버렸지만, 곧 버스가 오겠지.. 라고 느긋하게 생각하던 나는 다음 버스가 30분 뒤에나 있다는 사실에 허탈해하며 별 수 없이 정류장을 옮겨 다른 노선의 버스를 타고 산케이엔으로 향했다.
산케이엔은 생각보다 멀었고 버스로 40분 가깝게 걸렸다. 버스에서 내려 정문에서 입장권을 구입해 안으로 들어가자, 내 나이대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노인들과 외국인 단체객들만이 가끔 보일 뿐이었다.
산케이엔의 정원은 외원과 내원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처음에는 정원 안을 크게 한바퀴 돌면서 볼 생각이었으나 어느 건물 앞을 지나가다 가이드 할머니에게 붙들려(?) 내원을 먼저 구경하게 되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관람객은 전부 나이 지긋하신 분들 뿐. 그들 사이에서 무한한 뻘쭘함을 느끼면서 구경을 하는 둥 마는 둥 몇군데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외원으로 나와서는 정원과 연못을 돌아보았는데, 약간은 고리타분한 구석도 있었지만 난 의외로 이런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와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었다.
11시쯤 산케이엔을 나왔는데, 시간표를 죽 보니 사쿠라기쵸로 가는 버스는 한시간에 두어대에 불과했고, 아예 운행을 안하는 시간대도 있었다. 또다시 한참을 기다린 뒤에 버스를 타고 12시 무렵 사쿠라기쵸로 돌아왔다.
미스틱 콜라. 맛은 밍숭맹숭~
산케이엔 입구
정원의 연못 앞에서
연꽃..이긴 한데 꽃은 별로 안보인다.
여기서 가이드 할머니한테 끌려갔다 켁;;
일본의 전통가옥을 복원한 것이라 함
저 앞에는 외국인들이
내원 몇군데 더
밖에는 대나무가
난 이런 분위기가 좋다
건너편엔 정자가
계단을 올라갔더니
저기서 공장이 보였다
누군가 손에 5엔짜리를
오중탑
뭐하는 곳인지
조그만 사당
다리를 건너
정원을 한바퀴 돌았다
산케이엔 나가기 전에 한장
사쿠라기쵸역 앞의 고양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나는 먼저 린코 파크(臨港パーク)로 향했다. 공원 너머로 희미하게 베이 브리지가 보였고, 오늘 무슨 행사라도 있는지 린코 파크 안에서는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낯익은 캐릭터가 있으면 사진이라도 부탁해 볼까 했는데, 어느 작품의 무슨 캐릭터인지도 모르겠고 해서 그냥 관두기로 했다.
린코 파크를 나와 찾아간 곳은 닛폰마루 메모리얼 파크였다. 입구 옆의 티켓 자판기에서 6백엔을 넣고 티켓을 구입하니, 매표소에서 DISCOUNT~ 라면서 100엔을 돌려준다.
닛폰마루호에 올라서 안으로 들어가니, 실제로 운항했던 선박이었기 때문에 기관실이라던가 선실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닛폰마루호에서 내려와 옆에 있는 요코하마 마리타임 뮤지엄으로 들어갔다. 이런저런 영상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조금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은 죄다 꼬마들이 차지하고 앉아있어서 선박 모형들이나 둘러보고 뮤지엄을 나왔다.
코스모월드
린코 파크 가는 길
린코 파크
수상버스가 출발하는 푸카리삼바시
베이 브리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분수대인가
리마쨩. 페루 이주 100주년 기념이라 한다
거대한 닻이
코스프레
코스모월드 지나가다가
대관람차 코스모 클락
랜드마크 타워
닛폰마루호
배에 올라서
제독님 다음 출항일은 언제입니까
배 안을 기웃기웃
선장실
스탠드글래스. 돛을 펼치면 저런 모양?
회의실이라고 했던 것 같다
통신실인가
제독님 폭풍우입니다! 키가 전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요코하마 마리타임 뮤지엄에서. 모형의 디테일이 상당했다
뮤지엄에서 바라본 모습.
재난 영화의 한장면 같다
밖으로 나오자 비가 잠깐 내렸는지 길바닥이 젖어 있었다. 안그래도 먹구름이 까맣게 낀걸 보니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데.. 키샤미치(汽車道)를 지나 아카렌가 창고(赤レンガ倉庫)로 걸어가는 중 결국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아카렌가 창고 건물 밑의 처마 밑으로 비를 피했지만, 비를 피하기에 적당한 장소도 아니었고 앞으로의 일정도 있는데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시간이 지나자 비가 조금 잦아들었다. 이정도 비라면 돌아다녀도 괜찮을 것 같아서 야마시타 공원(山下公園) 쪽으로 가보기로 하고 걸어가는데 한 중간쯤 오자 그때부터 갑자기 비가 미친듯이 퍼붓는 것이었다. 나의 조그만 우산은 아무 소용이 없어서 나는 비를 쫄딱 맞고 굴다리 아래 초라하게 서 있어야 했다.
굴다리 아래서 또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커멓던 먹구름도 조금씩 사라져갔고,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아까처럼 왕창 쏟아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야마시타 공원은 일단 미뤄두고 아무데나 가서 옷이나 말리자 하는 생각에 니혼오도리(日本大通り)역으로 이동했다.
니혼오도리역 앞에는 바로 사쿠라대전 제국극장의 모티브가 된 요코하마시 개항기념회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작년에 아무 관계도 없는 유라쿠쵸 제국극장에 가서 '와 여기가 제국극장이야!' 라며 삽질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요코하마에 오면 반드시 이곳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코하마시 개항기념회관은 내부 입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쉬운대로 겉모습을 둘러보고 니혼오도리역으로 들어가 비가 멎기를 기다렸다. 역 안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가끔씩 나와서 날씨를 살펴봤지만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결국 1시간이 지나서야 어느정도 잠잠해져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키샤미치
키샤미치에서 보이는 퀸즈 스퀘어 요코하마
비내리는 아카렌가 창고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킹의 탑 카나가와 현청
니혼오도리
니혼오도리역에서
제국극장~~ 요코하마시 개항기념회관
잭의 탑이라고도 부름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이제야 외칠수 있다. 미카사 발진!!
아직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뜻밖의 비로 1시간을 날렸지만, 그나마 이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까 가려고 했던 야마시타 공원으로 향했다. 옷은 그런대로 말랐는데 신발 속까지 젖어버린 건 어쩔 수 없어서 걸을때마다 질퍽거리는게 아주 기분 더러웠다.
야마시타 공원에 도착하자 4시 10분 쯤 되었는데, 이곳은 야경을 보러 다시 오기로 하고 근처에 있는 있는 미나토노미에루오카(港の見える丘公園) 공원에 먼저 다녀 오기로 했다. 프랑스산에 올라 공원으로 들어서자 날씨도 안좋고 개방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꽤 있는 편이었다. 이곳의 전망대에서는 베이 브리지가 잘 보였기 때문에 한동안 바다 쪽을 바라보다 공원을 나와 야마테(山手) 지역으로 향했다.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야마테 지역은 몇군데만 훑어보고 지나갈 수 밖에 없었다. 베릭 홀과 요코하마 외국인 묘지 등을 살짝 둘러보고 그대로 모토마치(元町)를 지나 중화가로 향했다.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쳐서 우산은 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하루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기 때문에 저녁은 중화가에서 제대로 한끼 먹고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덜컥 들어갔다가 5000엔짜리 코스요리라도 먹게 되면 큰일이기에 한참을 왔다갔다 한 끝에 나름 괜찮고 가격도 적당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사람도 몇 명 없고 조명도 칙칙해서 분위기는 별로였다. 다시 나가기도 뭐해서 그냥 챠한(볶음밥)과 맥주를 시켜다 먹었다.
야마시타 공원 물의 수호신
히카와마루(氷川丸)
컨테이너로 만든 조형물
미나토노미에루오카 공원에서. 옛 프랑스군 주둔지 터라고 한다.
전망대의 모습
베이 브리지
로즈가든
외국인 묘지에서
Rest in peace
야마테 지역에선 오래 있지 못했다.
베릭 홀
모토마치
중화가 도착. 천후궁(天后宮)의 모습
관제묘(関帝廟) 길
관제묘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차이나 스퀘어?
용 모양의 장식이 멋졌던 가게
이중에서 어딜 골라야할지
내가 먹은 챠한. 맛은 그냥 그랬다.
선린문(善隣門)
북경골목
조양문(朝陽門)
중화가를 나와 야마시타 공원으로 돌아왔다. 이제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요코하마의 야경을 즐길 차례였다. 난 지난 두번의 여행에서 맺힌 한을 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친듯이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히카와마루, 마린타워 등의 끝내주는 야경을 감상하며(찍으며) 오삼바시(大さん橋) 국제 여객 터미널로 걸어갔다. 오삼바시 국제 터미널 자체도 멋졌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미나토미라이 21과 아카렌가 창고의 야경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아카렌가 창고에서는 그룹 ALFEE의 공연이 한창이라 노래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낮에는 비 피하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아카렌가 창고에 도착하니 공연이 끝나가는지 앵콜이 울려퍼지고 있었고, 시계를 보니 8시가 넘어있었다. 아직 다 보지 못한 곳들은 돌아가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미나토미라이역으로 향했다.
야마시타 공원 다시
내일은 맑겠군
마린 타워
히카와마루
야경 이번엔 놓치지 않겠어
미나토미라이 21
베이 브리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다
미나토미라이 21은 오삼바시 국제 여객터미널에서 가장 잘 보인다.
터미널 슬로프에는 은은한 조명이
아카렌가 창고
낮에는 그저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건물 이상은 아니었지만
왼쪽의 불빛은 ALFEE의 공연 때문
할말 없게 만드는 야경이다
미나토미라이로 돌아와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코스모월드에 가서 대관람차를 탈까 했는데, 이것보다는 랜드마크 타워 전망대에 올라가보자 하는 생각에 그냥 가까이서 사진만 찍고 나왔다.
그런데 랜드마크 타워로 들어가자 아직 전망대 입장시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거의 파장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입장료가 천엔씩이나 하는데 얼마 못있어서 나와야 한다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나는 결국 랜드마크 타워를 나와 미나토미라이역으로 돌아와 버렸다.
미나토미라이역에서는 다리는 아프고 사람도 많은데 도저히 서서오진 못할 것 같아서 꼼수를 썼는데, 종점인 모토마치ㆍ츄카가이(元町ㆍ中華街)역까지 가서 거기서 시부야행 열차를 탔다. 모든역에 정차하는 열차긴 했지만 급행하고 그리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다.
전철 안에서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니 왠지 모르게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비가 내린건 어쩔수 없다 치고.. 도대체 요코하마에서 하루종일 뭘 했지? 사진이야 예비배터리까지 다 써가면서 찍어 오긴 했지만... 내가 사진사는 아니잖아?? 결국 걷기만 한 건 저번 여행 때하고 똑같았다.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아무리 요코하마를 사랑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코하마가 날 싫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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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NZALEZ